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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농장과 농업과 담임선생님
  • 입력날짜 : 2004. 06.11. 21:01
풀벌레 소리 요란한 여름밤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준비를 해왔던 몇몇 친구들과 나는 그날 밤 학교 농장을 습격했다.
인문과와 농업과가 합쳐진 탓에 학교 농장에는 농과반 친구들이 땀흘려 가꾼 오이, 토마토,수박이며 참외가 탐스럽게 달려있었다. 학교농장은 특별한 먹거리가 없었던 우리들에게는 식량창고와 같았다.

농과학생들이 야간 순찰조까지 만들었지만 야음을 틈탄 농장습격사건은 거의 매일 일어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농장에서 서리를 하다가 발각되면 정학 조치하겠다”고 교장선생님이 서리와의 전쟁을 선포 할 정도가 됐다.
교장선생님의 선전포고도 배고픈 우리들에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우리는 등잔 밑에 해당하는 야간순찰조(농과학생)의 숙소(생활관) 앞 농장을 택했다. 그곳은 수박과, 토마토, 오이가 고랑을 번갈아 가며 심어져 있고 운동장 쪽으로 퇴로가 열려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밤 나와 친구들은 닭 모양새로 살금살금 농장으로 접근했고 나와 한팀은 오이를, 다른 팀은 토마토를 공략했다. 다음날 서리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어 속아따내기를 했다.

다음날 농업과 선생님이 난리가 났다.
“어떤 놈들이 겁도 없이 농장을 습격했다”며 우리 반에도 들리셨다. “좋은 말할 때 자수해서 광명 찾을 놈은 찾고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간이 부을 때로 부은 우리는 그날 밤 다시 서리를 결행했다. 장소도 같은 곳으로 했다. “어제 당한 곳이라 경계가 느슨할 수 있다”며 오히려 배짱 좋게 농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수박으로 하자”며 고랑을 빠르게 훑어 나갔다. 친구들이 앞으로 향했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옆줄에서 뒤따랐다.
반쯤가다 보니 한 친구가 웅크리고 열심히 수박을 찾고 있었다. 늑장을 부릴 형편이 아니었다. 빨리 가자는 생각으로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런데 그 친구는 뒤에 내가 있는 줄 아는지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하며 나즈막히 이렇게 말했다.
“마 조용히 해라 앞에 두 놈 있다”
농업과 담임선생님이었다.

나와 친구는 웅크린 선생님의 모습을 뒤로하고 살금살금 뒷걸음을 친 뒤 나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다른 친구들도 뒤늦게 눈치를 차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나와 친구들의 입에는 오이 하나씩이 물려졌고 그 모양새로 각 반을 돌아다녔다. 마음씨 좋은 한 친구가 자수를 하는 바람에 범행일체가 드러난 것이다. 망신은 당했지만 다행히 뒷 탈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순찰조와 함께 밭고랑에 웅크리고 있던 농업과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잊어 버릴 수가 없다.
“마 조용히 해라 앞에 두 놈 있다”



서용찬 기자 ycseo@morningnews.or.kr         서용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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