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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프로젝트, 해운대점 개관전시회 ‘깔롱 드 팝아트’전 개최
30억 원 호가에 달하는 키스 해링 10점, 앤디 워홀 4점 원화 공개
  • 입력날짜 : 2020. 07.20. 20:12
포스터.
피카프로젝트 해운대점은 ‘깔롱 드 팝아트’展을 오는 29일(수)부터 10월 31일(토)까지 개최한다.

피카갤러리 해운대점 개관 전시로 기획된 이번 ‘깔롱 드 팝아트’展 전은 1960년대 이후 미국을 거쳐서 전 세계를 뒤 흔든 팝아트 작품들 만나 볼 수 있는 전시회로 유명 작가의 작품별 특징을 살려 연출된 공간 및 포토존 등으로 구성했다.

‘깔롱’이라는 단어는 ‘폼 나게, 멋지게’ 등을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로, 팝 아트를 부산 시민들에게 보다 친숙하고 멋지게 보여드리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시 작품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미국출생),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Jean Charles de Castelbajac, b.1949, 모로코 출생),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 미국 출생), 케니 샤프(Kenny Scharf, b.1958, 미국 출생),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미국 출생)로 세계적인 팝아트 거장들을 팝아트를 한 자리에 모았으며, 기존의 팝아트 전시와는 차별화를 두어 무려 30억 원 호가에 달하는 키스 해링 10점, 앤디 워홀 원화 4점이 동시 공개된다.

이번 전시회는 팝아트 작품 전시 이외에도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 체험 프로그램, 예비 미술 컬렉터를 위한 미술 강의, 포토존, 영상 등 다양한 구성으로 진행되며, ICT 기술과 미술품 공동소유 기법을 활용한 피카프로젝트만의 장점을 적극 살려 26층 레스토랑 공간을 아트호텔로서 변신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피카프로젝트 송자호대표는 "이번 전시회에는 부산시민과의 소통을 목적에 둔 개관전시회인 만큼 시민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팝아트전을 기획했으며, 코로나19와 장마로 닫혔던 문화활동을 이번 전시회로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다"고 말했다.

한편 피카프로젝트 산하의 갤러리인 피카갤러리는 지난 3월 미국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과 영국의 YBA 그룹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작품을 시작으로, 5월에는 미국의 그래피티 아트스트이자 새로운 회화 양식을 선도한 키스 해링(Keith Haring)과 4명의 중국 현대미술 아티스트 진뉘(Jin Nu 金钕), 저우티에하이(Zhou Tiehai 周铁海), 저우 춘야(Zhou Chunya 周春芽), 리우 예(Liu Ye 刘野),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웨민준(Yue MinJun 岳敏君)과 그래픽 작업으로 유명한 카우스(KAWS)가 함께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어선 아트토이 작품을 선보인바 있다. 이번 개관 전시회는 피카갤러리 3호점이 위치한 해운대영무파라드호텔에서 진행된다.

<주요 작가 소개>
앤디 워홀 Andy Warhol, 버니 Bunny, 1980년대 Circa 1980, 시계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lock, 72x52cm 키스 해링 Keith Haring, 무제 Untitled, 1980년대 Circa 1980, 종이에 분필 Chalk on paper, 104x68cm

앤디 워홀은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트의 선구자이다. 워홀은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워홀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색 칠하기, 종이 오리기, 만화나 화려한 할리우드 잡지에 흠뻑 빠져있었다. 1945년 회화와 디자인으로 유명한 카네기 멜론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였고 미술학사 학위를 받았다. 워홀이 활동했던 당 시 미국 미술은 내적 세계를 표출하는 주관적인 추상표현주의가 대표되었다. 하지만 워홀은 대중문화의 일상적인 소재를 순수미술로 끌어왔고 자본주의 속성인 대량생산 제품과 유명 인물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업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워홀은 반회화적 팝아트의 특징으로 이미지를 반복적인 배치하고 기계를 이용하여 원작자의 손길을 지워 버림으로써 대량생산의 문화를 표현하였다.
앤디 워홀은 코카콜라, 달러 기호, 식품, 구두, 잡화,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 그 당시 미국 대중문화와 연관 있는 친숙한 이미지와 주제들로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작품으로 표현하며 미국 문화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대중들이 TV에서 보았던 그래픽디자인과 같은 형태를 선명한 색채로 구현 가능한 실크스크린 기법을 주로 사용 했다.

키스 해링은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났다. 1976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Pittsburgh)에 있 는 아이비 전문 미술 학교(The Ivy School of Professional Art)에 진학해 상업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1978년 피츠버그 미술공예센터(Pittsburgh Center for the Arts)에서 소규모 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뉴욕의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에 입학한다. 키스 해링은 1980년 해링 은 뉴욕 지하철역의 빈 광고판에 하얀 분필로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다. 소비 장려 목적으로 부착해놓은 광고물, 그리고 그로 인해서 아주 더러워진 뉴욕의 지하철역에 자신의 작품을 마치 광고의 일환으로 대치시킴으로써 소비문화를 대항하고 자본주의 사회에 맞대응한 작품을 선보였다. 불법 낙서였던 해링의 친숙한 픽토그램 (Pictogram)적인 간결한 선,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만화적인 도상 은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했고 대중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링은 지하철에 수백 개의 작업을 하며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선사했고, 이 지하공간은 해링의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실험실이자 전시장이 되었다. 키스 해링은 1986년 대중과의 융화를 위해 뉴욕 소호(Soho)에 ‘팝 숍(Pop Shop)’을 열었다. 팝 숍에서는 해링의 캐릭터가 있는 티셔츠, 포스터, 스티커, 자석 등을 판매했다. 해링의 아트상품을 통해 미국과 전 세계로 퍼져나갔 고 해링과 작품을 알리는데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해링은 1989년 ‘키스 해링 재단(The Keith Haring Foundation)’ 설립, 인종차별 반대, 반핵 운동, 동성애자 인권 운동, 에이즈 반대 운동, 어린이 자선사업 후원 등 사회문제를 다루며 지원했다. 굵고 짧은 예술가적 활동은 수많은 드로잉 및 회화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에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주류와 비주류 상호의존적인 맥락을 허물고 예술로서 소통적 역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0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바스키아는 일곱 살 때 길에서 놀다가 차에 치여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그레이의 해부학(Gray's Anatomy)」 책을 보며 지 냈던 병원생활은 이후 바스키아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76년 맨해튼의 도시학교(City-as-School)로 전학했 고, 그곳에서 낙서화가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함께 미술 공동제작을 했다. 바스키아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로 도심의 벽 위에 스프레이로 ‘SAMO(Same Old Shit 약자)’ 문구들을 써넣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80년대 미국의 핍박받는 흑인의 인물을 주제로 삼아 바스키아만의 특유의 원시성과 거친 표현은 인종적 저 항심을 드러냈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78년 낙서 미술계를 떠나 캔버스에 정착하면서 그래피트 아트가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본 격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화가로서 자신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바스키아는 1981년 이탈리아 에밀리오 마졸리 화랑과 1982년 독일 다큐멘타7에서 미국의 신표현주의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고, 1983년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83년 비엔날레 표현전에 최연소 작가로 출품했다. 198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그룹전에 포함되어 전 시했고, 나아가 4000 달러의 작품 가격이 1만 9000달러에 거래되는 등 젊은 나이에 에술적으로는 물론, 경제적 으로도 성공하며 인정받았다.

피카프로젝트는?

경제학적으로 미술품이란 “미적 효용을 주는 소비재의 역할과 일정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단”으로 정의 됩니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소유’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에 공공 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함으로 만족합니다. 피카프로젝트는 공동소유를 통해 고가의 미술품 투자에 접근이 용이하도록 , IT기술을 활용하여 누구나 쉽게 미술품 소비에 참여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술품 소유의 대중화 선도를 목표로 미술시장의 선진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중과 예술을 이어주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 컨테츠를 기획하고,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하여 세계 미술 시장 진출을 주도하고, 현대미술의 흐름에 영향력을 가지고자 합니다.


오정미 기자 newsmorning@daum.net        오정미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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