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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연개소문과 당 태종
“하늘아래 두 영웅은 없다”
  • 입력날짜 : 2004. 09.28. 19:20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실에서 나온 경험적인 얘기지만, 나라가 태평스러울 때 설사 영웅의 재질과 기질을 갖춘 사람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터이다. 중국 역사상 걸출한 영웅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세민, 곧 당 태종도 바로 그랬다.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고구려와 벌인 한판 승부에서 완패한 수나라는 통일 왕조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40년을 채우지 못하고 북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망한다. 반란군의 지휘자는 군벌 출신의 이연이었다.
장안을 접수한 반란군은 곧 정부군이 되어 쿠데타의 공식에 따라 왕위에 오른다. 수 양제의 손자를 왕으로 옹립했다가 얼마 안 가 폐위하고 나라 이름을 바꿔 이연이 즉위하니 그가 당 고조다.
이연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쿠데타를 건의하고 실행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아들은 둘째인 이세민이었다. 맏아들 위주의 엄격한 중국 질서에서 그에게 왕권이 돌아올 리 없다. 하지만 그 맏아들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세민은 이 간단한 추리를 현실로 만든다. 태자로 책봉된 형 건성과 아우 원길마저 죽이고 왕위에 오른것이다. 큰 쿠데타와 작은 쿠데타를 모두 성공한 그는 군인으로서도 탁월했지만 정치가로서도 뛰어났다.
이세민이 집권한 23년간 당은 내외적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른바 ‘정관(貞觀 당태종의 연호)의 치’라 불리는 시절이다. 특히 그는 전대의 역사서를 편찬하게 하여 인류역사에 큰 공헌을 하는데, 그 가운데 ‘진서(陣書)’는 직접 서술하기도 했으니 여러 가지 면에서 영웅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뛰어난 전략가였던 그는 돌궐과 고창국을 복속시켜 명실상부한 동양의 패자가 되었다. 유독 정벌하지 못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고구려다. 패배를 모르던 그에게 쓴 맛을 안겨 준 사나이는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이다.
연개소문이 등장할 당시 고구려는 살수대첩의 두 영웅 건무와 을지문덕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 내분이 일고 있었다. 영류왕 건무는 일찍이 장수왕 때처럼 북수남진(北守南進)을 외친 데 반해 을지문덕은 수나라 말기 쇠약해진 중국의 상황을 이용해 북진할 것을 주장했다.
젊고 패기에 찬 연개소문은 당연히 을지문덕을 좇아 북진을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영류왕과 군신들의 눈 밖에 나게 된다. 마침 지방에 대가(大加 고구려의 관직)로 있던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죽자 연개소문은 일단 몸을 피신한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왕과 군신들이 끝내 그를 죽이려 하자 그는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로 쳐들어가 영류왕과 반대파 중신들을 죽이고 허수아비 보장왕을 세운다.
집권 방식도 닮은 꼴이고 나이도 엇비슷한(연개소문의 출생연도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맏아들인 남생이 633년생인 것으로 미뤄 598년생인 이세민보다 약간 아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세민과 연개소문은 당과 고구려 간의 전운이 무르익으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어차피 맞붙어야 할 적수로 점차 떠오른다.
수나라의 원한을 갚고 동양을 천하통일하려는 당의 낌새를 눈치 챈 연개소문은 먼저 백제 의자왕과 동맹을 체결해 전쟁이 벌어질 경우 고구려는 당을, 백제는 신라를 담당하기로 역할 분담을 한다. 그러나 이세민은 15년간의 치적을 통해 나라의 발전을 이루고 정권을 안정시킨데 반해 연개소문은 이제 막 집권한 처지였다.
전쟁의 계기는 묘하게도 연개소문의 집권이었다. 644년 이세민은 자신도 쿠데타로 집권했으면서 “연개소문이 왕과 대신들을 살해하고 백성을 탄압하며 내 명령을 받들지 않으니 정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군사를 직접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공존할 수 없는 두 영웅이 드디어 정면으로 맞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세민은 수나라의 패인을 분석하고 용의주도하게 전쟁을 준비해 왔으면서도 연개소문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결국 패하고 만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불세출의 명장 양만춘이 지키는 요동의 안시성이다.
연개소문은 요충지인 안시성을 양만춘에게 맡겨 철저히 수비하고만 있으라고 명해 놓고, 이세민이 안시성에서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즈음 정병을 이끌고 후방의 임유관을 기습해 주의를 분산시킨다. 후방을 기습당하고 부랴부랴 회군하는 당군은 다시 연개소문에게 결정타를 맞는다.
이 싸움에서 크게 패한 이세민은 원정을 극구 말리던 당 제일의 장군 이정의 충언에 따르지 않은 걸 몹시 후회한다. 그러나 양만춘의 화살에 맞아 왼쪽 눈 마저 잃고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고구려에 사무치는 원한을 갖게 된다.
그래서 수나라처럼 ‘고구려 콤플렉스’에 걸려 재차 원정을 계획하지만 한번 싸움에 혼이 난 군신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화살에 묻은 독이 발병의 원인이 되어 5년만에 사망한다. 다시는 요동을 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이로써 연개소문은 홀로 남은 외로운 영웅이 되었지만 그도 역시 늘 염두에 두어 오던 중국 원정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얼마 안 가 죽고 만다.
이렇게 해서 동아시아 고대 사상 최대 전쟁이었던 수와 고구려, 당과 고구려 싸움에서 고구려는 모두 승리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간의 전쟁으로 인한 국력 소모로 나라가 흔들렸고 게다가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 다툼으로 내분마저 심각해졌다.
결국 당 고종은 고구려를 치지 말라는 아버지 이세민의 유지를 묘하게 해석해, 신라와 결탁하고 먼저 백제부터 치고 들어와 멸망시킨다. 고립무원에다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간에 권력 다툼이 극심해져 고구려는 거의 자멸하다시피 멸망하고 만다.
연개소문과 이세민은 둘 다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했지만 역사적인 평판은 정반대다. 이세민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형제들가지 살육했는데도 중국뿐 아니라 우리 역사학자들에게도 희대의 명군으로 칭송받는 반면, 연개소문은 왕을 살해한 사건만이 부각돼 ‘삼국사기’에는 “흉악하고 잔폭하며 무도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아마도 연개소문이 백제와 동맹을 맺은 사실이 더욱 김부식의 심기를 건드렸으리라)
더구나 연개소문은 그 이름의 뜻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으며 출생년도는 물론 사망년도도 불분명하게 전해지고 있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마땅한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책과 세상]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저자 김용만
7세기 막강한 당나라의 100만 대군을 물리치며 동아시아를 쥐고 흔든 고구려의 중심에는 연개소문이 있었다. 중국의 경극에서도 당태종 이세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군으로 묘사될 만큼 중국인의 잠재의식에 존재감을 각인한 연개소문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임금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역적으로 기록한 반면, 신채호와 박은식은 위대한 혁명가, 또는 민족 자존심을 지킨 탁월한 전략가이자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했다.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일본서기’ 등 국내외 각종 문헌과 기록을 토대로 역사적 상상력을 담아 연개소문을 추적했다. 저자는 642년(영류왕 25년)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살해하고 혁명을 일으키기 전날 밤 고뇌하는 인간적 모습부터 그리고 있다.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와 정면 대결을 피하자는 유화파와 강경파, 문신과 무신,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간의 대립이 극심한 상태였다. 마침내 왕과 몇몇 대신들은 대외 강경론을 주장하는 연개소문을 없애려고 했지만 먼저 첩보를 입수한 그가 거꾸로 왕을 베어버렸다.
연개소문의 정권 장악 후 고구려는 당나라와 일전불사의 태도를 보인다. 우리 역사상 가장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를 펼친 때였다. 영류왕 때는 당나라 사신이 왕에게 절도하지 않았지만, 연개소문이 지켜보는 보장왕 앞에서는 기어가 엎드렸다는 기록도 있다.
저자는 당태종 이세민을 연개소문의 라이벌로 묘사한다. 이세민 역시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병법에 능하고 중앙정부의 통치를 안정시킨 인물이었다. 연개소문은 645년 1차 고ㆍ당 전쟁과 661ㆍ662년의 2차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당군에 대항하는 고구려인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최고권력자 연개소문이 죽은 후 권력공백이 생기면서 아들 남생과 남건의 내분으로 고구려는 급격히 몰락한다. 그는 이러한 사태를 예상했던 듯 두 아들에게 “고기와 물 같이 화합해 작위를 다투는 일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헛일이었다.
역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구성된 이 책은 ‘연개소문은 왜 혁명을 일으켰을까’, ‘그는 왜 신라를 적으로 돌렸을까’ 등의 의문문으로 제목을 달고, 독자적 시각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ㆍ평가하고 있다.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 고구려가 백제와 손잡게 된 내막 등을 밝히는가 하면 중국 사학자들이 연개소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양만춘을 과대포장 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자료 고증이나 그 동안 연구결과에 대한 치밀한 검토보다는 한 개인의 영웅 만들기로 흘렀다는 느낌이 있지만, 베일에 싸인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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