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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전설이 있는 희망의 섬 이수도
  • 입력날짜 : 2006. 05.20. 10:31
이수도의 일출.
하늘의 흰 구름과 억새풀이 하늘거리는 곳! 멀리 가덕도의 흰 등대가 조화를 이루어 편안함을 주는 이수도!

이수도는 대금산 동쪽 자락에 있는 시방마을 앞에서 학이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섬이다. 시방(矢方)의 해변 모양이 활처럼 휘어져 이수도를 향해 활을 쏘는 모양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도 이수도로 가는 이수호(011-9551-7973)는 시방의 해안에서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7번 출항하고 있다.

이수(利水)도의 원래 이름은 이물(利勿)도 또는 학섬 이었다. 머리를 대금산으로 하여 날아오르는 학 같이 생겼다고 하여 학섬이라고도 하는데, 학섬 뒤편에 작은 섬 3개가 학의 알처럼 놓여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대구가 많이 잡히는 이수도 근처에 권현망을 설치하여 부자 마을이 되자 바닷물이 이롭다는 뜻으로 이수도가 되었다.

흥남 마을에서 본 이수도.

시방과 이수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서로 가까운 이웃사촌이다. 예전에 이 이웃사촌 간에 작은 다툼이 생겨 각자의 마을에 비석을 세웠는데, 이 비석이 방시순석(放矢循石)과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이다.

이수도는 많은 물고기가 잡히고 식수가 좋아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수도에서 물을 길어 먹는 시방 사람들이 더 잘살았다. 이에 이수도 사람들은 시방에서 화살을 쏴 학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방시순석이라는 화살을 막는 글이 새겨진 비석을 시방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세웠다.

비석을 세우자 이수도는 번성을 누렸고 시방 사람들은 못 살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방 사람들이 이 비석을 없애려 하였기에 서로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에 지친 시방 사람들은 비석을 깨뜨릴 수 있는 쇠 화살을 쏘면 된다고 생각하여 방시순석이 마주보이는 곳에 방시만노석을 세웠고, 이후 이수도보다 시방이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가덕도와 학섬의 알에 해당하는 무인도.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수도에 일본인의 어장이 생겼고, 시방보다 마산, 진해, 부산으로 가는 뱃길이 가까워 번성을 누리게 된다. 그렇지만 거제도가 거제대교에 의해 육지로 연결되면서 시방 마을의 교통편이 더욱 편해져 이번에는 시방이 더욱 잘 살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구의 대부분을 잡는 어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수도는 어장에서 대구가 거의 잡히지 않게 되어 소득원이 끊어지고, 마을은 다시 분란에 싸이게 된다. 이에 방시순석 비석 위에 또 하나의 비석(방시만노순석)을 올려놓았으나 비석을 올려도 예전의 이수도 영광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수도와 시방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수도 사람들은 부모인 방시순석 비석 위에 자식인 작은 비석이 올라앉아 부모를 누르고 있으니 마을이 잘 될 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더구나 학의 목에 해당하는 곳을 학교와 공장을 짓기 위해 파 헤쳐 놓았기 때문에 이제 이수도의 힘은 없어졌다고 한탄을 하고 있다.

대금산에서 바라본 이수도 전경.

이수도가 번성을 누릴 때, 좁은 섬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섬 전체가 밭과 논 및 집뿐이다. 지금은 경작하지 않은 논과 밭에 잡초만 무성하다. 그렇지만 이수도에 희망은 있다. 섬의 대부분은 경작지로 사용하다가 버린 곳으로 억새밭이 장관이다. 넘실대는 바다와 은빛의 억새풀이 하늘거리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수도에 나무와 억새를 심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정비하고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쪽 해안의 절벽은 웅장하면서 아름답고, 물고기가 많아 갯바위 어디에서나 낚시가 잘 된다. 또 최근에 대구 치어의 방류로 많은 대구가 이수도 근방에서 잡히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가덕도 등대와 옥포만의 모습은 너무나 뛰어나며 날씨가 맑으면 대한해협 너머에 있는 대마도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방과 이수도에는 전설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민요인 ‘굴까로 가세’도 전해온다.

시방에 있는 비석.

‘굴까로 가세’는 장목면 시방마을에 전해오는 노동요이다. 이 노래는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갯바위에 자라는 미역, 멍게, 홍합, 굴 등을 따면서 아낙네들이 불렸던 노래다. 우리 조상들의 슬픔이 담겨 있고, 재미있고 흥겨운 가사를 담고 있는 이 민요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된 민속놀이로 재연되었다.

제1 과장은 마을 부녀자들이 굴까러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대바구니와 굴쪼시를 준비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제2 과장은 머리에 대바구니를 이고, 손에 굴쪼시를 든 아낙네들이 선창자를 따라 노래하면서 입장한다. 제3 과장은 자연적이고 아무런 부담없이 앉고 서서 노래를 부르며 굴을 깐다.

이 과장이 이 놀이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노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4 과장은 대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퇴장한다.

이수도에 있는 비석.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 새섬에 굴까로 가세
굴도 까고 님도 보고 겸사 수시로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 새섬에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앞 뒷집 큰아가 굴까로 가세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 새섬에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우리 일행들 굴까로 가세
못살겠네 못살겠네 연두 새섬에 못살겠네
밤에는 님 그립고 낮에는 물기렵아 연두야 새섬에 못살겠네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배를 타고 놀러 가세

이야기와 노래가 가득한 시방과 이수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시방마을의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은 거가대교 접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얼마 후에는 원래의 자리를 내 주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파괴된 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원래대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것을 아는 주민들이 있기에 매일 아침 동녘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강한 햇살은 이수도에 밝은 미래의 축복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김철수 기자 기자 kcs1217@hanmail.net         김철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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