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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의 재미있는 거제도 이야기
  • 입력날짜 : 2006. 06.23. 11:16
청정해역과 굴(조개류)이 많아 살기 좋은 산달도

거제칠면 다 댕기도 산달섬이 조중일세.
캥중캥중 쾌쾡중
앞에 오는 김도령 뒤에 오는 박도령
너도 봤나 나도 봤다 봤거든 본체만체
(중 략)
거제칠면 다 댕기도 산달섬이 제일이다.
너도 봤나 쿵덕쿵덕 나도 봤다 쿵덕쿵덕
산방산에서 바라본 산달도와 다도해의 모습

우리 조상들은 정월이면 마을 사람들이 농악패를 만들어 서로 화합하는 잔치 마당을 열었는데, 일부 농악패들은 다른 지역으로 찾아가기도 하였다.
한산도(현재는 통영시)를 포함하여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거제도를 주로 찾은 농악패들은 고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산달도는 현재 거제도의 부속섬 중 칠천도, 가조도 다음인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농사지을 땅은 적지만 어업으로 유지되는 생활은 넉넉한 편이라 인심이 후하였다. 그래서 고성 농악패들은 정월 보름날 밤에는 정이 넉넉한 산달섬에 가서 농악놀이를 신명나게 펼쳤다. 위의 가사는 농악패들이 산달섬에 대하여 부른 노래이다.
산달페리호에서 바라본 산달도와 복도의 모습

산달도 여행은 거제면 법동리 고당마을에서 시작된다. 고당이라는 이름 속에는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 한 할머니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들어 있어 할미당 마을이라고도 한다.
고당 마을 앞의 산은 원래 고능도라는 섬으로 파도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지금은 간척되어 섬이 아니다. 이 섬에는 착하고 어진 마고 할머니가 살았는데, 마을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였기에 사후에 주민들이 제당(제당의 이름은 할미당 또는 해미당)을 짓고 동제를 지내고 있다.

고당마을과 산달도 간에는 산달페리호(011-865-0944)가 하루에 11회(07:15 ~ 18:20) 운항하고 있다. 배가 출발하면 고능도 앞의 작은 섬, 복이 많은 섬을 의미하는 복도를 만나게 된다.
산달페리호의 모습

배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이는 산달도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에 위치한 산방산이 산(山)의 모습이듯이, 산달도도 세 개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산(山)의 모습이다.
특히 계절에 따라 달의 뜨고 지는 위치가 세 봉우리를 왔다 갔다하였기에 삼달이라고 하였다가 산달이 되었다고도 한다.

산달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는데, 전등, 후등, 실리마을이다. 전등마을은 고당마을의 할미당과 마주보는 앞마을이라는 의미이고, 후등마을은 할미당에서 보면 산등성이 너머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실리마을은 후등마을 옆에 위치하는데, 산달도를 이루는 가운데 봉우리의 아래에 있다.
굴 양식장 전경

마을 뒤편의 봉우리(214미터)가 시루처럼 생겨 시루봉이고, 시루봉 밑의 마을이라 실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는 성종 원년(1470)에 거제도에 거제칠진을 두었을 때, 산달도의 시루봉에 아래에 칠진을 거느리는 수군절도사의 수영을 두고 전술 훈련을 하였기에 이 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페리호에서 내러 섬을 한 바퀴(약 9킬로미터) 둘러보는데, 가는 곳마다 쉬어가면서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산달도 여행의 묘미는 섬을 돌면서 섬 주변의 경치를 보는데 있다.
동쪽으로는 거제도의 주맥을 이루는 계룡산에서 선자산, 노자산을 지나 가라산으로 연결된 산줄기에 얹힌 뭉게구름을, 남쪽으로는 추봉도와 어울려진 함박금의 모습을, 서쪽으로는 노을이 아름다운 서좌도와 한산도의 모습을, 북쪽으로는 웅장한 산방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굴 양식장에 매달 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어부들이 산달도에 터를 잡고 많은 해산물을 잡았다고 하는데, 그 흔적으로 후등마을에 일본식 주택이 남아 있다. 마을의 당산목으로 심겨진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는 전등마을에는 폐교가 된 산달초등학교의 흔적이 남아있고, 묵논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누렁소의 모습이 한가롭다.

마을이 있으면 굴 껍질의 묶음을 만날 수 있는데, 산달도 주변의 해역은 모두가 굴밭이다. 청정해역인 이 곳 바닷가는 거제도에서 가장 많은 굴 양식을 하고 있다. 이곳이 굴이 잘 자라는 지역임을 선사시대 유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바로 산달패총이다.
묶음잇꽃 사이에 자리잡은 일본식 주택

전등과 후등마을 사이에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좁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각 마을에서 도로가 시작되는 부분에 패총이 위치하였는데, 지금은 도로공사로 인하여 대부분이 파괴된 실정이다. 1972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이곳을 발굴하였는데, 이곳에 나타난 유물에는 신석기시대의 유문토기류가 200여점, 단도(丹塗)토기가 20여점, 그리고 타제석기류가 10여점 등이 있다.
전등마을의 모습

예전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았던 산달도, 조선시대에는 거제칠진을 거느리고 훈련 장소로 삼았던 산달도, 지금은 거제 특산물인 굴을 양식하고 있는 산달도! 빼어난 자연물은 없지만 섬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어촌의 풍경을 진솔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김철수 기자 kcs1217@hanmail.net         김철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6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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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수일아! 누나야정 지현2011.11.21 (13:11:06)
5지현이누나 ㅎㅎ배수일2010.09.25 (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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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산달섬을 보니 가슴이 시리다신상엽2006.06.28 (1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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