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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빛을 보는 ‘거제의 유배문학’
  • 입력날짜 : 2012. 07.17. 20:21

거제고전문학연구가 고영화씨. 그의 10여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까. 17일 거제시 공공청사에서 ‘거제유배문학의 이해’란 주제로 2시간여 동안 그의 열띤 강연이 있었다.

변방에만 머물던 거제에 이렇게 주옥같은 시를 발굴, 세상에 드러낸 그는 행정의 지원없이 일개 민간 연구가가 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거제도 유배자들이 전한 한시 760여 편과 토착민과 관료들이 거제의 자연을 노래한 시 125편, 기생 및 한글문학 10여 편 등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고영화씨는 “거제로 유배 온 유배자는 현재까지 500여 명의 명단이 발굴되었으나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주요 사건의 주동자만 실록이나 일성록 등에 기록돼 있다. 연좌된 자들은 물론이고 형사 잡범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거제도 대표 유배 문학인으로는 정서, 이행, 홍언충, 최숙생, 정황, 김진규, 조병현, 심광세, 홍무적, 이윤, 김세필, 송시열, 김창집 등이 있다. 이 중 이행‧정황‧김진규‧송시열을 거제 4대 유배 문학인으로 꼽았다.

유배작품은 널리 알려진 대로 자신의 신세와 임금에 대한 충정,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거제민의 실상과 풍경을 노래했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배작품은 760여 편에 이른다.

고씨는 “유배문학은 개인과 시대적 정신이 절실히 반영된 것으로 시대‧정치적 갈등속에서 정치밖으로 밀려나 현실복귀를 꿈꾸는 그들의 사상과 염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 하면서 생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거제가 대표적 유배지가 된 것은 고려시대 때다. 당시 가장 멀리 있던 거제로 유배를 보내던 것이 1912년까지 이어져 왔다. 800년간 이어온 유배자들은 죽거나 풀려날 때까지 자기 땅에서 쫓겨난 슬픈 이방인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 거제인들에게는 당대 최고 지식인들로부터 문화와 사상, 정신을 직접 배워 낙후된 거제의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촉매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척박한 거제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잠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학자들. 그들은 그 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동생이었고 스승이었다. 유배작품을 통해 치열하게 살아간 그들의 삶도 우리 거제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거제의 대표적 유배자와 문학

고려시대 정서는 1157년 의종 11년 2월 동래에서 거제도 사등면 ‘오양역’으로 이배돼 1170년 정중부의 난 이후 복권됐다. 우리나라 유배문학의 효시인 ‘정과정곡’을 여기 거제도에서 암담한 귀양살이를 겪으며 지었다.

또 한사람 정황은 1560년 49세로 사망할때까지 거제향교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거제 유배자 중 교육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도 정황이다. 당시 경남 전 지역에서 학생들이 몰려와 거제향교가 최고의 부흥기를 맞기도 했다.

-계룡산시
계룡산은 푸른 바다 가운데 있고
한껏 높은 산의 기세가 해가 뜨는 동쪽 하늘을 압도한다
오아포는 예로부터 대장수를 두었다 하네
오양역이 못쓰게 되어 여섯 해 동안 우선 작은 성을 쌓았고
가라산 웅치고개 여기가 남녘의 땅이라
먼 곳을 끌어당겨 익숙히보니 아홉 내(川)가 달리는게 분명하구나
모자와 같은 북쪽에 두 개의 섬이 있는데
얼굴을 아무리 그대로 유지할래도 거품같이 차차 쇠하여 늙어가고
땔감나무와 밥을 지어 끝내니 인간세상 신선같이 상서롭구나
어느새 한해를 보내면서 슬슬 돌아다녀도
손발이 굳어 못쓰게 된 이런 몸이 가엾지 않는가
높은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어찌하여 잠시 업신여겨 보이는지
양 겨드랑이 날개가 가볍게 나부껴 훨훨 난다네

거제면 동상리에서 귀양살이를 한 김진규는 송시열의 제자로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주자학과 춘추대의를 기반으로 난마와 같은 정국속에서 그 대의와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한다.

그는 그물을 쳐서 대구를 잡는 거제 어부들의 모습과 처음 먹어보는 대구 맛에 반해 고향집에 홀로 계신 어머님이 생각날 정도로 대구 맛이 훌륭했음을 시 한편에 담았다.

-대구를 먹으며 느끼는 바가 있어
큰 입에 가는 비늘은 세상에 보배인 바
바다생선 중에 홀로 대단히 초륜하다
어부들은 푸른 바다에서 힘써 그물을 쳐서 모아
역관이 빨리 달리어 대궐에 올린다네
예전엔 미천한 신하에게 늘 은혜로 하사했는데
먼 변방에 정처 없이 떠돌다 이에 새로운 맛을 보는구나
밥 먹다 다시금 고향집 문이 그리워지네
서글퍼라, 이유 없이 늙으신 어르신만 남는구나

-밤의 경치
달을 토해내는 가벼운 구름
꽃나무는 맑은 안개 속에 잠긴다
밤이 깊어 고요한 외딴 마을
맑은 샘물소리 대숲을 울리네

밤의 경치를 읊은 서경시이다. 외딴 거제면 동상리 골짜기의 적막감에 낮에는 잘 들리지 않던 죽천(반곡서원 서쪽에 있는 샘물) 샘물 소리까지도 청아하게 들린다. 거제도의 밤늦은 풍경이라 그런지 더 정겹다.

-거제도 어촌 / 이유원
물구름 돌 기운이 발 위에 서늘하고
옛 먹을 가벼이 때리니 책상에 향기 가득하다
오얏 꽃 마을에 보슬비 내리는데
시인에게 이끌려 낮잠만 길어지네

-거제도 귀양살이 / 송시열
모든 산 그림 같고 바다 아스라하니
고야선인도 불러 올 것만 같아
문득 옷자락 진토에 있음 두려워
샘물에 사흘 동안 깨끗이 빨았네

거제학자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거제가 배출한 최고의 문인이자 학자인 동록 정혼성은 한시(漢詩)로 문집을 남긴 사람으로 거제도 토박이로서는 유일하다. 거제면 반곡서원 안에 동록당에 안치돼 있으며 매년 춘삼월 첫 정일에 유림들이 반곡서원 우암사(송시열)와 함께 제사를 올리고 있다.

1779년에 출생했으나 죽은 연대는 알 길이 없다. 그는 한 평생 은사로 살면서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고 많은 글을 남겼다. 그의 글은 대부분 초서와 해서로 글씨체가 아름답고 유순하며 지나침이 없던 그의 삶과 닮아 있다.

당시 동록은 일생동안 오로지 학문을 좋아해 깊은 숲과 계곡(계룡산과 선자산 일대)에 파묻혀 이 세상에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동시대에 살았던 추사 김정희가 ‘동록문집’을 읽고 감탄해 7언절구 시 한편 남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중국인 심평향도 동록의 시와 글씨를 보고 피와 생활이 모두 군자라고 칭송했다. 동록 정훈성은 거제의 유림이나 사회에서 정군자(鄭君子)라 부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에 대한 많은 설화도 전해져 오고 있다.

동록의 철학은 노자의 무위자연(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사상과 퇴계 이황의 윤리도덕을 중심으로 하는 주리설(主理設)에 바탕을 두고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말을 남겼다.

莫結脫막결탁-맺고 풀지 말라(속박이나 집착에서 벗어나라)
中虛基心중허기심-늘 한 가운데 자리 할 때 그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라
道消化陰陽도소화음양-세상의 이치는 음양의 조화로움에서 기인한다

동록 정훈성은 거제면 명진리에서 살았으며 그가 제자를 가르친 곳은 거제면 녹동, 사슴골이란 곳이며 거제뿐 아니라 인근 통영 고성출신의 제자들도 많았다.

조선시대 거제 한글 작품

-거제기녀 ‘가향’을 생각하며
오니예 천연한 꼿치 연꼿 밧긔 뉘 잇느냐
하추예 네 날 쥴을 나는 일즉 몰낫노라
지금의 떠나는 정이야 엇지 그지 잇스리

작가는 아마도 거제고을의 관리였거나 유배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소 문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또한 오니, 하추 등의 한자어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거제에 잠시 머문 장사치일 가능성이 크다.

거제기녀 가향을 진흙탕에서 핀 연꽃에다 비유하며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글귀다. 즉석에서 지은 글임에도 가향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거제도 고전문학에 있어 한글로 지은 멋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가향은 가무는 못하나 얼굴이 아주 예뻤으며 당시 18세였다고 전한다.

-처녀의 향수
서울이라 유처녀가 거제 음재 귀양 와서
대구야 청청 일년이야 봉에 구름아 둥실 높이 떴네
나도 언제 평화로저서 구름같이 떠나갈까

거제도는 귀양지다. 서울에서 귀양 온 선비가 딸을 데리고 거제 읍내에 와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귀양이 언제나 풀릴까 하고 먼 북녘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처녀가 구름을 타고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노래다.


거제도는 어느 지역보다도 발전된 산업과 뛰어난 풍광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제는 문화가 있는, 이야기가 있는 고장을 만들고 발굴해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거제를 물려줘야 한다. 모든 스토리텔링은 역사문화의 두께와 비례해 귀결되기 때문이다.

거제고전문학 작품은 관리나 거제선비, 학자 등이 지은 한문학과 한글작품이 120여 편에 이르며, 거제유배문학 작품은 760여 편이 발굴돼 있다. 또한 거제도 전승 민요는 총 417편, 구전설화는 약 250여 편이 있다.

역사에서 항상 ‘변방’으로만 기록된 거제의 역사를 되찾고 이 땅과 바다에서 몸 부대끼며 살아 온 거제인의 자부심을 이제는 되찾아야 한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거제 산천 곳곳에 녹아든 거제인의 삶, 이제 그 속살들을 들춰내야 한다.



윤광룡 기자 newseye2000@naver.com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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