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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바꿔달라고 했어요
  • 입력날짜 : 2004. 01.18. 00:00
며칠 전 서점에 들렀을 때다. 예닐곱 살쯤 된 여자 아이가 언니인 듯한 더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 문을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아이는 주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저어, 우리 엄마가 이 책을 바꿔 달라고 했어요."
하고는 만화책 한 권을 쑥 내밀었다. 그리고는 읽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가져 온 거라고 하며 미처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이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서점 주인은 오전에 사간 책을 이제사 바꿔 달라면 안된다고 했다. 주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던 아이는 주인의 말엔 아랑곳없이 다짜고짜로 어머니가 바꿔 오라고 했으니 빨리 바꿔 줘야 한다며 아주 당당한 목소리였다.
서점 주인은 기가 막힌 듯 후―, 한숨을 쉬곤 잠시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만화책은 교과서와는 달리 한번 읽고 나면 제 몫을 다한것이니 오전에 가져 간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으로 바꿔 가면 한 권 값으로 두 권을 보는 셈이 되는 게 아니냐고 늘어지게 설명해 줬다. 그제서야 두 아이는 무슨 말인지를 깨달은 듯 추켜세웠던 어깨를 스르르 무너뜨렸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언니는 다소 미안한 듯이 동생의 뒷머리를 슬쩍 밀며 코를 훌쩍 거리고 문을 나섰다. 아이들을 돌려보낸 주인은 서점 안에 있는 사람들 들으란 듯이, "이런 일이 하루에도 한두 번씩은 꼭 있습니다." 하고 크게 말을 했다. 그러니 오는 아이마다 일일이 타일러 줄 수도 없어서 바쁜 날에는 그냥 말없이 바꿔줘 버리거나, 아니면 호통을 쳐서 돌려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는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잔꾀를 부려 얼마간의 책값을 아껴보고자 한 짓이 훗날 그 아이들에게 어떤 큰 버릇을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인가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걱정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아무런 여과나 비판없이 받아들여 이것을 거침없이 흉내낸다. 적어도 내 자식만은 다듬고 잘 길러서 쓸모있는 인재로 길러 보고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가 갖는 보편적인 욕심일 것이다. 자식을 옳게 키우는 일보다 더 큰 욕심이 어디 있으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바르게 자랄 식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어르신들은 허리띠를 조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건전하고 바른 것을 가르치기 위해 멀리 험한 산을 넘어 다니면서 학교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의 순진한 생각과 행동을 나무라면서, "너도 좀 약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걱정스런 아이들의 미래인가.
어느 것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동심에 미움보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마음만을 더 깊이 느꼈다. 서점 주인이 "그 책을 다 읽었지?"하고 다그쳐 물었을 때, 반밖에 안 읽었노라고 어물어물 대답하는 그 반쯤이라는 말은 분명히 천진한 양심이었을 것이기에, 그래도 그 아이의 진실한 바탕이 아직은 남아 있다 생각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모르긴 해도 주인의 그런 가르침을 듣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면 후일 자라서 그 양심마저 사라지고, 한 쪽도 읽지 않았다고 딱 잡아떼게 될지도 모른다. 답답한 가슴을 누르며 서점 문을 나섰다.


윤광룡 기자 yong8128@chollian.net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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